능소화
시인: 박선영
궁궐 속 이름 없는 풀꽃 하나
임금의 눈에 띄어
꽃방석에 앉아 웃었다고
꿈같은 섬강은 단 한번
어둠의 늪으로 빠져 들었다고
구중궁궐 깊은 처소에서
기다리고 기다리던 풀꽃
담장 밑 버선발 닳도록
서성이며 기다리다
눈물샘 마르고 상사병 되었다고
소원대로 담장아래 묻힌 풀꽃
그 이름 능소화
그 넋이 꽃으로 환생한 여인
임의 소리 들으려 담을 넘어
여름 태양 아래서도
궁궐 속 격을 잃을세라
고고하게 피는 꽃
긴긴 여름 고개 내밀어
주홍비단 치맛자락에
못다 이룬 애달픈 사랑이라
독을 품은 것은
정절을 위한 은장도롸
여름이면 담장아래
목마른 채 흔들리는 능소화
사랑을 아는 이들이 오가며
오래도록 보고자 한다